오른쪽 아랫배가 갑자기 아프면 대부분 "맹장 아닌가?"라고 먼저 떠올립니다. 저도 외과 병동에 근무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보니, 그 통증의 원인이 게실염인 경우가 생각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게실염은 모르고 넘기기 쉬운 질환이지만, 방치하면 복막염까지 이어질 수 있어 정확한 이해가 꼭 필요합니다.

장벽에 생기는 주머니, 게실이란 무엇인가
게실(diverticulum)이란 장벽의 일부가 바깥쪽으로 불룩하게 튀어나온 작은 주머니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자전거 타이어에 미세한 구멍이 생겨 안쪽 튜브가 부풀어 나온 모양과 비슷합니다. 이 게실은 점막이 약해지거나, 장 내부 압력이 지속적으로 높아질 때 형성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서양인과 한국인의 게실 발생 위치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주로 왼쪽 대장인 에스결장(sigmoid colon)에 게실이 생기는 반면,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은 상행결장(ascending colon), 즉 오른쪽 대장에 게실이 흔하게 나타납니다. 여기서 상행결장이란 소장과 연결된 직후부터 시작되는 대장의 첫 번째 구간으로, 해부학적으로 충수돌기와 가까이 위치해 있습니다. 이 위치적 특성 때문에 게실에 염증이 생겼을 때 충수돌기염으로 착각하는 사례가 실제로 매우 많습니다.
제가 병동에서 직접 경험한 일인데, 응급실에서 "맹장염 같다"는 소견으로 올라온 환자가 복부 CT를 찍고 보니 게실염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복부 CT(computed tomography), 즉 컴퓨터 단층촬영은 장기의 단면 영상을 정밀하게 보여주는 검사로, 게실염과 충수돌기염을 감별하는 데 있어 현재로서는 가장 신뢰도 높은 진단 방법입니다. 증상만으로 두 질환을 구분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 검사가 감별 진단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국내 대장 게실 유병률은 건강검진 수검자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이며, 식습관의 서구화와 고령화가 주된 배경으로 지목됩니다(출처: 대한소화기학회).
염증이 터지기 전에 알아야 할 게실염의 경과와 치료
게실 자체는 증상이 없습니다. 문제는 그 주머니 안에 장 내용물이 고여 세균이 증식하면서 염증이 시작될 때입니다. 이 상태가 바로 게실염(diverticulitis)이며, 여기서 diverticulitis의 어미 '-itis'는 염증을 뜻하는 의학 접미사입니다. 즉, 게실에 염증이 붙은 상태를 통칭합니다.
게실염의 증상과 치료 경로는 중증도에 따라 크게 달라집니다. 제가 병동에서 관찰한 바로는, 대다수 환자가 경구 항생제 치료와 식이 조절만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반면 고열이 동반되거나 통증이 심한 경우에는 즉시 입원이 필요했고, 금식과 수액 치료, 정맥 항생제(IV antibiotics)를 병행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정맥 항생제란 경구 복용이 어렵거나 흡수율이 낮을 때 혈관을 통해 직접 약물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빠른 혈중 농도 도달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가장 심각한 경우는 천공(perforation)이 발생했을 때입니다. 천공이란 게실 벽이 얇아지다 못해 구멍이 뚫리는 상태로, 장 내용물이 복강으로 흘러나와 복막염(peritonitis)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복막염은 복강 전체에 염증이 퍼진 상태로 생명을 위협할 수 있으며, 이 경우에는 수술적 절제술이 불가피합니다. 다행히 제가 근무하는 동안 천공까지 간 사례는 드물었지만, 그만큼 초기 대응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몸으로 배웠습니다.
게실염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는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섬유질 부족과 만성 변비로 인한 장 내 압력 상승
- 비만, 운동 부족, 흡연, 음주
-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 장기 복용
- 장내 미생물 불균형 및 고령
여기서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NSAIDs)란 아스피린, 이부프로펜 계열처럼 스테로이드 성분 없이 염증과 통증을 억제하는 약물군으로, 장점막을 자극해 출혈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게실이 있는 환자에게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게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재발 예방이 치료의 완성
게실염 치료에서 제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이것입니다. 항생제로 염증을 잡아도 게실이라는 구조 자체는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주머니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생활 습관이 바뀌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염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실제로 병동에서 퇴원 교육을 할 때 이 부분을 반드시 설명했는데, 환자분들이 "나았으니 끝"이라고 생각하시는 경우가 많아 늘 아쉬웠습니다.
재발 방지를 위한 핵심은 결국 고섬유질 식이(high-fiber diet)와 충분한 수분 섭취입니다. 고섬유질 식이란 하루 25~30g 이상의 식이섬유를 섭취하는 식단으로, 대변의 부피를 늘리고 장 통과 시간을 단축시켜 장 내압 상승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퇴원 후 이것만 제대로 지켜도 재발 빈도가 유의미하게 줄어든다는 것이 임상에서도 확인된 사실입니다.
또한 게실이 있는 경우 대장 내시경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이 권고됩니다. 게실 자체가 암으로 변하지는 않지만, 게실과 대장 용종(polyp)은 유발 위험 인자가 상당 부분 겹칩니다. 대장 용종이란 대장 점막이 비정상적으로 자라 돌출된 조직으로, 일부는 방치 시 대장암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게실 보유자라면 용종 동반 여부 확인 차원에서도 정기 내시경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국내 대장암 발생률은 인구 10만 명당 45.5명으로 OECD 국가 중 높은 수준에 속하는 만큼 예방적 검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출처: 국립암정보센터).
갑작스러운 심한 복통, 고열, 혈변이 동시에 나타난다면 이는 응급 상황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가 판단 없이 즉시 응급실을 찾아야 합니다.
결국 게실염은 급성기 치료보다 이후의 관리가 성패를 가르는 질환입니다. 섬유질과 수분이라는 지극히 기본적인 생활 습관이 재발을 막는 가장 강력한 도구라는 점, 그리고 오른쪽 복통이라고 해서 무조건 맹장염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 두셨으면 합니다. 평소와 다른 복통이 느껴진다면 자가진단보다 빠른 검사가 답입니다.
이 글은 외과 병동 근무 경험과 개인적인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증상이 있다면 반드시 의료 전문가의 진료를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