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검진 결과지를 받아 들고 '혈당이 좀 높네'라고 생각하며 그냥 넘긴 적 있으신가요? 저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그런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습니다. 당뇨병은 증상이 없어서 넘기기 쉬운 질환입니다. 하지만 그 침묵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직접 환자분들을 곁에서 지켜봐 온 입장에서 솔직하게 풀어보겠습니다.

당뇨병의 정의
당뇨병은 우리 몸이 섭취한 음식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에 문제가 생겨 발생하는 질환입니다. 인슐린이 충분히 분비되지 않거나, 분비되더라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혈액 속의 포도당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당뇨병의 본질은 인슐린(Insulin)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인슐린이란 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음식을 먹었을 때 혈액 속 포도당을 세포 안으로 끌어들여 에너지로 쓰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인슐린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거나, 만들어지더라도 세포가 반응하지 않으면 포도당이 혈관 안에 쌓이게 됩니다.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췌장의 베타세포(beta cell)가 파괴되어 인슐린 자체가 분비되지 않는 제1형 당뇨, 그리고 서구화된 식습관과 운동 부족, 비만 등으로 인해 인슐린이 분비되어도 세포가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제2형 당뇨입니다. 여기서 베타세포란 췌장 안에 있는 랑게르한스섬을 구성하는 세포 중 하나로, 혈당이 오르면 인슐린을 만들어 내보내는 공장 역할을 합니다. 한국인 성인 당뇨 환자의 대다수는 이 제2형에 해당합니다.
당뇨병의 초기 증상
당뇨병이 무서운 건 아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난 환자분들 중에서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왔다"는 분은 생각보다 훨씬 드물었습니다. 대부분은 다른 이유로 병원을 찾았다가 혈액 검사에서 우연히 고혈당이 발견된 경우였습니다.
혈당이 올라도 처음에는 몸이 적응해 버립니다. 고혈당 상태가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자각 증상이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내 당뇨병 유병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2023년 기준 30세 이상 성인 6명 중 1명이 당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대한당뇨병학회). 그럼에도 본인이 당뇨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 더 큰 문제입니다.
고혈당이 상당히 진행되면 그때서야 몸에 신호가 옵니다. 제가 직접 환자분들께 들은 증상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물을 아무리 마셔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고 소변을 자주 보게 된다
- 잘 먹는데도 체중이 계속 빠지고 에너지가 없다
-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지치고 만성 피로가 이어진다
- 작은 상처가 잘 낫지 않거나 시력이 갑자기 흐려진다
- 손발 끝이 저리거나 감각이 무뎌지는 말초신경병증 증상이 나타난다
여기서 말초신경병증(peripheral neuropathy)이란 혈당이 높은 상태가 지속되면서 손발 끝까지 혈액을 공급하는 작은 혈관과 신경이 손상되는 합병증입니다. 저는 이 증상을 '발이 나무토막처럼 느껴진다'라고 표현하시는 환자분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그 시점이면 이미 혈당 조절이 오래 안 된 상태였습니다.
당화혈색소가 더 중요한 이유 — 경험으로 배운 혈당 관리의 핵심
저희 아버지도 당뇨를 앓고 계십니다. 처음 진단을 받으신 후 아버지가 저에게 가장 먼저 물어보신 것이 "공복혈당이나 식후혈당보다 왜 당화혈색소(HbA1c)가 더 중요하다는 거냐"였습니다.
당화혈색소란 적혈구 안의 헤모글로빈(hemoglobin)에 포도당이 달라붙은 비율을 나타내는 수치입니다. 적혈구의 수명이 약 120일이기 때문에, 이 수치를 보면 지난 2~3개월 동안의 평균 혈당 상태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이렇게 설명해 드렸습니다. "당화혈색소는 지난 3개월 동안 제 혈관이 설탕물에 얼마나 절여져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성적표 같은 거예요." 검사 전날 굶거나 식단 조절을 해서 수치를 올리거나 내릴 수 없으니, 공복혈당보다 훨씬 솔직한 지표입니다.
실제로 대한당뇨병학회 진료 지침에서는 당화혈색소 6.5% 이상을 당뇨병 진단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목표 수치는 7% 미만으로 관리할 것을 권고합니다. 인슐린 저항성(insulin resistance)이 높아진 상태에서는 공복혈당이 정상처럼 보여도 당화혈색소가 이미 높게 나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인슐린 저항성이란 인슐린이 분비되어 있어도 세포가 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태로, 제2형 당뇨의 핵심 문제입니다.
제가 경험상 느끼는 건, 많은 분들이 "오늘 공복혈당이 괜찮으니까 괜찮겠지"라고 안심하다가 뒤늦게 합병증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당뇨 관리는 하루하루보다 긴 흐름을 봐야 합니다. 국내 건강검진에서는 공복혈당 검사가 기본 항목에 포함되어 있지만, 당화혈색소는 별도로 요청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 더 챙겨서 검사받을 필요가 있습니다(출처: 질병관리청 국가건강정보포털).
혈당 관리는 단순히 약을 먹는 것만이 아닙니다. 식이 조절,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정기적인 검진이 함께 가야 합니다. 제가 직접 아버지 곁에서 지켜보면서 느낀 것은, 당뇨는 '관리하는 병'이지 '고치는 병'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관리를 일찍 시작할수록 합병증의 가능성이 낮아지고, 일상을 더 오래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증상이 없다고 괜찮은 게 아닙니다. 지금 당장 증상이 없더라도, 40세 이상이거나 가족 중 당뇨 환자가 있다면 당화혈색소 포함 혈액 검사를 받아보시길 권합니다. 아버지를 보면서, 그리고 병동에서 수많은 환자분들을 만나면서 가장 많이 든 생각은 딱 하나였습니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그 '조금'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건강 상태는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